세계역사

이스라엘역사 5차로 가는건가? 중동전쟁

같은시간을 사는 사람 2024. 8. 27. 21:30



이스라엘역사 5차로 가는건가? 중동전쟁


이스라엘과 이슬람국가들은
이미 무려 4차례나 맞짱을 뜬 건 아실 겁니다
4번 모두 이스라엘이 이겼죠

이슬람 알라 아랍족을 외쳤지만
실상은 팔레스타인의 생존보단 각국의 이익을 위한
준비가 전혀 안된 전쟁이었습니다

당연히 4번 모두 이스라엘이 이겼죠
오늘은 4차례의 중동전쟁에 대해서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씨부려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동네가 개판이 된 건
낄 때 안 낄 때 다 껴서 자국이익을 위해 별벨짓거릴
다하고 대륙마다 똥을 싸놓은 영국 때문입니다
싸도 너무 많이 쌓죠

3중 계약
영국이 영국 한 거죠ㅡㅡ;;

아랍인에겐 후세인맥마흔협약을
유대인에겐 벨푸어선언을
프랑스 러시아랑은 오스만튀르크를 분할해 먹는다는
사이크스피코 밀약 맺었고
세계대전이 끝나자
아랍 유대인과의 약속은 개 씹고
영국령으로 만들어버립니다ㅡㅡ;;
당연히 아랍인 유대인의 불만은 커졌겠죠
이에 안될 거 같으니까
영국은 이문제를 유엔에 넘기고
이스라엘자본의 로비 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팔레스타인영토 6%밖에 소유하지 못했던 유대인에게 50%가 넘는 영토를
주는 분할 안이 제안됩니다
당연히 팔레스타인인들은 거부했죠
2500년 넘게 산집을 현관 거실 빼고 다 주라는 건데
받아들일 이유가 없죠

근데 유대인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이번기회를 놓치면 언제 국가를 세울지 알 수 없다는
절박함 그들은 이 유엔분할 안을 근거로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합니다
솔직히 이스라엘의 건국명분이 좀 빈약하죠
하느님한테 공증받고 육성으로 인증해 주신 것도
아닌데 뜬금 없이 모여들어서는 여기 우리 땅 우리나라
해버린 거니까

그래 놓고는 민병대를 조직 팔레스타인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고 깽이든 사람들을 총으로 내쫓은 거죠
한마디로 물에 빠진 거 건져내 줬더니 보따리
내놓고 거쳐 이런 거죠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보기에 애초부터 같이 살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암튼
이 일을 시작으로 4차례나 전쟁을 벌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건국선언부터 2차 오일쇼크까지를
알아보겠습니다

텔아비브에서 건국선언을 하자마자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한 모든 아랍국가들이
공격을 시작했고 이게
1차 중동전쟁(1948.05.15 ~ 1949.03.10)입니다
이스라엘은 건국전쟁이라 부르고 팔레스타인에선
대재앙 1948년 전쟁으로 부릅니다
결과는 서로 딴생각이었던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절박함에 패했습니다
요때 이스라엘은 1949년 정전협정을 맺으면서
유대인거주지를 55%에서 78%로 늘립니다

재밌는 건 이정전협정에서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얻었고 요르단은 서안지구
는 얻었습니다
한마디로 정작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인 75만 명은 얻는 게 아무것도 없이
고향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ㅡㅡ;;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이 좋을 이유가 없겠죠

현재에도 세계물류량의 15%를 처리하는
경제적으로 개이득인
수에즈운하소유권을 놓고 벌어진
2차 중동전쟁(1956.10. 29 ~ 1956.11.03)은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의 선방으로 시작된 전쟁입니다

프랑스 영국은 범아랍주의를 외치던 나세르가 국유화한 수에즈운하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반이스라엘무장조직을 지원하는 이집트를
조지는 게 모든 면에서
좋았던 이스라엘은 전략적으로 유리한 시나이반도를 얻기 위해  이집트를 공격한 건데

뭐 게임이 안 됐겠죠
선방무적이니  ㅡㅡ;;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100시간 만에 목적을 이룹니다
근데 그 과정에서 침략에 대항하는 수많은 이집트민간인도 공격해 죽여버리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 그래도 반서방정서가 심한데 휘발유를 때려 부은 거죠

당시 중동에 친소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소련에겐
찬스고 중동에서 친소세력 확산을 막고 친미국가를
만들려던 미국에겐 환장할 노릇이었죠

소련은 이집트평화를 위해 핵을 쏘겠다고 영프이를
위협했고 미국은 유엔에서 영프이철수결의안을 의결시키고 나토에서도 제명시키겠다고 위협합니다
냉전시대 큰형 둘이 이렇게 위협하니
어쩌겠어요 방 빼야지^^

전쟁에선 분명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겼지만
소득은 없었고 오히려 개이득을 본 건 얻어터진
이집트 나세르였습니다

미소로부터 수에즈운하의 소유권을 인정받았고
상황이 어찌 되었던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군대를
철수시켰으니 그의 인지도와 범아랍주의의 인기도
상승했으니까요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가 완성된
3차 중동전쟁(1967.06.05 ~ 1967.06.10)은
보통 이스라엘의 원사이드전쟁 6일전쟁라고 불립니다
아주 계획적인 이스라엘의 선방

이 사달이 난 건 소련이 이집트에게 알려준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할 거라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이정보 때문에 이집트 요르단은 이스라엘 국경 쪽으로
군대를 이동시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전략적 요충시설
폭격으로 작살내  이집트 공군력을 삭제시켜 버립니다
제공권을 잃었다 현대전에선 답 없는 거죠

이때부터 원사이드로 이집트를 두들겨 패고
시나이반도를 점령해 버립니다

이집트가 깨쳤는데 요르단이 이스라엘을
이긴다 말이 안 되죠
역시나 원사이드로 두들겨 패고
덤으로 시리아도 두들겨 패서 골란고원을 먹어버립니다

그 결과 나세르의 범아랍주의는 나락 가고
이슬람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종교적이고 반서방 반이스라엘적인 무장세력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위권발동이었지만
그 결과는 돌 이길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죠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된 겁니다ㅡㅡ;;

그래도  선방무적^^

이렇게 6일 만에 이스라엘은 현재 이스라엘국경을
완성했습니다 ㅡㅡ;;

이렇게 반이스라엘 감정이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에 출전한 유대인선수에 대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 단의 테러사건
검은 9월 단사건(1972.9.5 ~1992) 일어납니다
11명의 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선수들이 사망합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무려 20년에 걸쳐
검은9월단 관련자들을 암살했습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보복테러로 맞섰고요

덕분에 양측의 감정은 ㅡㅡ;;
이 얘기를 스필버그감독의 영화 뮌헨입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이스라엘관계가 끈끈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중동은 반서방 반미감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고
미국은 중동에서 친미국가 하나정도는 꼭 있어야 했으니까요

1967년 아랍 8개국이 수단 하르툼에 모여서
반이스라엘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과는 평화 없음 이스라엘과는 협상업흠
이스라엘은 국가로 인정할 수 없음
무평화 무협상 무인정 ㅡㅡ;;

나세르가 죽고 집권한 사다트는 반이스라엘 정서가
들끓는 상황에서 시나이반도를 돌려주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제안을
합니다만 이스라엘은 모른 척하죠^^

물론 사다트는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고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준비가 완료되자
사다트는 이스라엘의 속죄일인 욤비프르에
시리아와 함께 이스라엘 공격합니다
이게 욤키푸르전쟁으로 불리는
4차 중동전쟁(1973.10.06 ~ 1973.10.25)입니다

참고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선방도
속죄일인  욤키푸르에 공격한 겁니다

전장의 전반기는 이집트가 우위 속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이때 미국이 등장해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가 역전됩니다

역시나 이스라엘의 승리
편향적인 미국의 태도에
친미성향이 있던 아랍국가들까지 분노하게 되고
1973년 1차 오일쇼크를 일으킵니다
미국에 대한 경고였고
전 세계는 대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이란에서 친미성향의 팔라비왕조가
무너지는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고
이란의 미국에 대한 석유수출을 금지하면서
1978년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들어보시니까 어떠세요
참 복잡하죠

이스라엘의 절박함은 폭력으로 이어졌고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분노 역시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피의복수가 이어지고 있는 건데
여기에 제국주의시절부터 서방국가들이
싸놓은 똥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국제정세까지 포개지면서
아주 꼬락서니가 ㅡㅡ;;

누구 편이라고 말하기엔 아주 많이 복잡합니다

여기까지가 이스라엘역사  5차로 가는 건가? 중 동전 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