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씨부려볼 역사는
중국역사 중 500년 간이 이어진 대혼란기
춘추전국시대 중 춘추시대입니다
춘추시대의 시작은 주나라가 건융족의 침입으로
유왕이 죽고 낙읍으로 천도한 기원전 770년
부텁니다
진시황제도 인물열전에서 씨부렸지만
이 시대가 워낙 나라도 많고 인물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아서
일일이 다설명하다가는 끝이 없으니
춘추시대 회맹의 맹주로 불리는 5명만
씨부려볼게요
여기서 회맹이라는 건
주나라로부터 분봉을 받은
제후들이 모이는 모임말하고요
이 모임을 주최하는 제후는
존왕양이라는 대의명분아래 주왕조를 섬기는
제후 중 짱이라는 의미의 패자로 불립니다
이때 패자로 불린 사람들 5명이라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하는 거고요

첫 번째 패자는 제환공(齊 桓公)
제나라샤람이고 제나라는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시킨 태공망 강자아가 분봉받아 세운나라죠
제후에 오르기 전 이름은 소백
소백은 이복형 규 와의 권력투쟁에서
이기고 제후에 오르며 환공이 됩니다
권력투쟁 당시 그의 곁에는 포숙아가 있었고
그와 세트로 묶이는 관중은 규 의편이였고
심지어 환공을 죽으려고 까지 했는데
관중의 친구였던 포숙아의 설득으로
관중을 등용해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듭니다
훗날 이런 포숙아 와 관중의 사귐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가 되었습니다
환공 과 관중은
경제를 발전시켜 힘을 키우고 초나라의 북진을
막고 발음하기도 힘든 규구(葵丘) 회맹을 열고
춘추시대 첫 패자에 오릅니다만
관중 사후 아들 간의 권력투쟁에 휘말려
감금되었다가 기원전 643년
사망하지만 권력에 미친 아들들은
아버지의 시체를 버려둔 채 다툼을 버리고
2달 후 권력을 잡은 아들이 장례를 치르려고
찾았을 때는 이미 횐공의 시신은
완전히 부패된 후였습니다
참 권력이 뭔지 ㅡㅡ;;

두 번째 패자는 진(晋) 문공
진나라는 주문왕 의 동생이 분봉받아
만들어진 국갑니다
진(晋) 문공
그는 진정한 대기만성의 제훕니디
제후가 되기 전 이름은 중이
역시나 권력다툼 때문에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전국을 무려 19년 동안 개고생을 하며 유랑을 합니다
그의 곁에는 개자추 등 수많은 신하들이
함께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며 다행일 겁니다
그렇게 진(晋)으로 돌아와
환갑이 자나 62세에 제후가 되고 19년 동안 함께한호헌의 재상으로 세우고
권력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무려 11개의 성씨를 귀족가문으로 키우고 그들을 이용해 군대를
키웁니다
제환공이 관중과 함께 경제에 집중한 것과 다르게
그는 군사력 강화에 집중합니다
귀족을 키운일이 훗날 진나라가
귀족들에 의해 삼국(위조한)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 군대를 이용해 주나라의 쿠데타를
진압하고 초나라의 북진을 성북전투에서 막고
천토회맹을 열고 패자의 지휘를 얻게 됩니다
그는 어느 역사책에서나 제환공과 더불어
춘추오패에서 논란이 없이 끼는 인물입니다
그와 관련된 얘기는 그가 힘든 시절
아사하기 직전일 때 자신의 허벅지살까지
바친 개자추를 귀국 후 농공행상에 소홀히
대했는데 이에 개자추는 노모와 함께 산속에
들어가 은거했는데
솔직히 허벅지살까지 먹였는데
그럴만하죠
자신의 잘못을
느낀 진문공이 복귀할 것을 권하지만
개자추가 이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진문공은 산에 불을 질러 개자추가
산에서 나오게 하려고 했지만
개자추는 노파 함께 불길 속에서 죽습니다
이날이 24 사절기 중 청명이었고
진문공은 개자추가 죽은 이날은 불을 못쓰게 했고
덕분에 찬음식을 먹는 한식이 생겼답니다

세 번째 패자는 초장왕(楚 莊王)
이때부터 패자가 좀 그런데
첫째 둘째 패자가 대의명분으로 세웠던 동주시대
존왕양이의 적대세력이었던 초나라가 패자로
등장하니까요
그가 바로 초장왕(楚 莊王) 이고
왕이되기전 이름은 려(侶)
그의 나라인 초나라는
초한지영웅 항우의 고향인나랍니다
주왕조로부터 분봉을 받았지만
주나라 동쪽으로 천도하고 세력이 약해지자
스스로 왕이라 칭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장왕은 아버지 목왕이 급사해서
어린 나이에 즉위했는데 즉위 후 3년 동안은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오거(伍擧) 소종(蘇從)의 충언을
받아드려 급각성
수백의 간신을 처단하고
인재를 등용해 부국강병을 이루고
여태까지 자신들을 오랑캐취급하며 패자로
군림하던 진(晋) 나라를 필전투에서 꺾어
진(晋) 나라 대신해 패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와 관련된 고사성어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인데
이 의미는 날지도 울지도 않는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걸 의미하는데
즉 장왕이 즉위초기 벌인 유흥이
간신과 충신을 구분하면서
때를 기다렸다는 겁니다^^
네 번째 패자는 오왕 부차(吳王 夫差)
역시나 이민족취급을 받던
오왕 부차(吳王 夫差)가 패자로 등장합니다
그의 패자등극은
초의 수도를 점령한 아버지 합려(闔廬)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초나라에서 온 오자서를 등용해 부국강병을
기틀을 마련했습니다만
월을 공격하다 마지막패자가 되는
구천에게 죽임을 당하고
오왕 부차(吳王 夫差)는
복수를 다지기 위해 가시가 많은 장작더미에서
잠을 잤다고 하고
훗날 마지막패자
구천의 쓸개핢기를합쳐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자서와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 와
힘을 합쳐 중원의 패자 진(晋)을 제압하고
강남세력최초로 중원진출을 이루고
패자가 되고
아버지의 원수 구천마저 제압해 버리지만
월나라를 멸망시키자는 오자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천을 인질로 잡아놓습니다
이게 오나라 멸망의 원인 됩니다
다섯 번째 패자는 월왕 구천(越王 勾踐)
그는 오나라 합려를 죽였지만
합려의 아들인 부차에게 패해 인질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의 책사 범수의 도움으로 월나라로 돌아와
상담(嘗膽)하며 복수심을 다지고
범려와 문종의도움으로 기원전 477년
부차를 고소에서 포위공격해서 자결하게 하고
패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때 범려가 갑자기 모든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하면서 같은 공신 문종을 찾아가 말하길
구천은 고난을 함께 할 순 있으나 부귀는 나눌수얷는 사람이라고 평하면서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 먹을 테니
문종도 낙향하라고 했지만
문종은 이를 거절하고 구천과 후일을 도모하다가
모함으로 죽고 맙니다
이 얘기에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습니다
여기까지가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씨부려본
춘추시대의 패자 춘추오패(春秋五覇)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엔 진시황이 중국최초의 통일을 이룬 전국시대에 대해 씨부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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