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같은시간을 사는남자가 씨부려볼 역사는
반유대주의역사 반유대주의역사 권력에의한 간첩사건 드레퓌스사건(Dreyfus Affair)입니다
1894년10월15일은 그가 체포된 날입니다
카톨릭이 국교화된이후
구세주 예수를 팔아먹은 저주받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반유대주의는 유럽전반에 퍼져있었고
이사건을 일어날 당시 19세기말 유럽은
반유대주의가 아주활활 타오르던 시절이였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면 그책임이 유태인이라는 탓을
하던시절이였습니다
거기에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겁나 얻어터진시기도하구요^^
암튼 1894년 9월 프랑스주재독일대사관으로
향하던 한통의 편지가 프랑스정보국의 수중에
들어가게되는데 그편지의내용은 프랑스군사기밀이였는데
그내용은 많은부분이 포병과 관련된정보라
당시 수사를 맞은 참모본부는
필체가 유사하다는 이유로 드레퓌스대위를
10월15일 체포하고
비공개 재판에 회부
1894년 12월 22일 종신유배형과 군직위박탈 선고했는데
당시 드레퓌스는 내죄는 오직 유대인이라것뿐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를 샬리군도에있는 한섬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희망의 서광이 비추는데
드레퓌스를범인으로 몰았던 참모본부의 책임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고 피가르중령이 부임합니다
이때 그는 프랑스주재독일대사관에서 첩보원으로부터 발신인이 없고 수취인만적힌 한통의 엽서를 받게되는데
에스테라지소령이 수취인이였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피가르중령을 수사하게되고
그가 진범이라는걸 알게됩니다
하지만 그는 튀니지로 좌천됩니다
의혹은 계속늘어나지만
프랑스정부 와 군부는 이를 무시하고
사건을 은폐합니다 에스테라지소령은
퇴역하고 재판에서 무죄를 인정받습니다
나라꼴이 참^^
이때 프랑스의 문화가 에밀졸라가 한편의글
나는 고발한다를 개제하면서 프랑스는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대립하게됩니다
거기에 드레퓌스사건에 결정적증거가 조작되었다는게 밝혀지면서
재심이 시작되지만
그증거를 만든 앙리라는 장교는 교도소에서 자살합니다 마치 영화같죠^^
하지만 더 기가 막힌건 재심의 결관대요
모든죄를 인정하고 10년형을 선고해버립니다
논란은 더 심해졌고
드레뷔스에게 죄를 인정하면 사면한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암튼 심신이 지쳐있던 드레퓌스는 이판결을
받아드리고 가족과 재회하게됩니다
그리고 1904년 재심을 신청하고
1906년 무죄판정을 받고 군대로 돌아가게됩니다
하지만 몇년후 전역하지만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포병장교로 복귀
조국 프랑스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진짜 프랑스에 반역자인 에스테라지소령은
영국으로 도망쳐 잘살다죽죠ㅡㅡ;;
드레퓌스사건은 민주주의발전에 기여했지만
요즘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이스라엘 건국운동이
등장하는데
드레퓌스사건을 지켜본후 충격을 받은
유대계 오스트리아 언론인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시온주의 세계대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으로 유대인 국가 건설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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