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유럽역사 116년간의 국지전 백년전쟁 (The Hundred Years' War)

같은시간을 사는 남자 2023. 10. 25. 21:30


유럽역사 116년간의 국지전 백년전쟁 (The Hundred Years' War)


오늘은 무려 116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백년전쟁(The Hundred Years' War)의
하일라이트 아젱쿠르전투가 있었던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시간을 사는남자가 씨부려볼얘기는 백년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프랑스 영국의 전면전이 아니었습니다
5대에 걸친 장대한 전쟁이기는 합니다만
거의 프랑스에 침입한 영국의 약탈을
기본으로 하는 국지전이었고
계속 싸운 것도 아니고 쉬었다 싸우고 쉬었다
싸우는 전쟁이었습니다

전면전으로 붙었다면 아마 영국이 얻어터졌을 겁니다

체급부터 달랐죠
당시 프랑스는 유럽의 최강국이었고
영국은 작은 섬나라였으니까요

그럼 이 전쟁은 왜 시작된 걸까요?
먼저 당시 영국(잉글랜드)은 노르만왕조였고
이왕조는 노르망디공국의 공작인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정복하고 세운 왕조였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영국의 왕은 프랑스왕의 신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왕은 혼인을 통해 프랑스 내
여러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 영토가 프랑스왕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왕은 영국왕이 꼴 보기 싫었고
프랑스 내 영국왕이 봉토를 몰수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는데

이때 프랑스의 국왕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합니다
물론 딸은 있었지만 카밀라법으로
여성은 왕이 될 수 없었고
이에 샤를 4세의 여동생 이사벨라의 아들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왕위승계를 주장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이 본격화됩니다

프랑스귀족들의 힘으로
에드워드 3세의 주장은 무시되고
샤를 4세의 사촌 필리프 6세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당시 에드워드 3세는 스코틀랜드와 전쟁 중이었기에 파리로 가서
필리프 6세에게 충성서약합니다

하지만 뒤끝장렬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 영국왕의 봉지를 몰수해 국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먼저 필리프 6세는 에드워드 3세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스코틀랜드를 지원하면서
기옌지방을 몰수하려고 하죠
이에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모직물생산으로 경제요충지인 프랑드르에 양모수출을 금지시킵니다
그러자 프랑드르의 상인과 수공업자들은
에드워드 3 세편이 되고
이에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도전장을 보내고 1만은 군대를 끌고
프랑스침략을 시작합니다

처음엔 프랑스도시들을 약탈하면서
3년을 버티지만 군비가 털어져 영국(잉글랜드)으로퇴각힙니다

1346년 첫 대결이 벌어집니다

필리프 6세는 3 민이라는
대군을 끌고 영국(잉글랜드)과 대결하게 되는데
이게  크레시전툽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백년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영국(잉글랜드)이 완승합니다.

프랑스의 자랑 장갑기사단이 대패하는데
영국(잉글랜드)의 신무기 장궁과 계속된 내전 속에 다져진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략의 완승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세가 오른 영국(잉글랜드)은
본국과 제일 가까운 항구 칼레로 진격 1년 만에
점령합니다
이전투에서 학살을 피하기 위해 도시대표 6명이
나서는데 이들이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를
오블리스 노블리제의 상징이 됩니다
이렇게 칼레를 점령하고 본국으로 귀국해
다음전쟁을 준비하려고 하지만
공포의 흑사병이 창궐하고 전쟁은 7년간 휴전상태를 갖게 됩니다

아시죠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작살낸 질병
세대가 건너
1355년 에드워드 3세의 장자흑태자 에드워드
필리프 6세의 아들 굿맨 장 2세 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역시나 영국(잉글랜드)은 도시약탈전술을 사용합니다

이에 장 2세는 대군이 이끌고 프아티에에서
영국(잉글랜드)과 대결을 버리지만
이번에도 프랑스는 대패하고 장 2세마저 포로
잡히게 되고 300만 크라운
(현재시세로 70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몸값을 요구합니다
그 와중에 프랑스에선 내란발생해
영국과 싸울 여력이 없었고 1360년 평화회담을
통해 브레타니 칼레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조약을 통해 영국의 프랑스왕에 대한 봉건적 의무를 무효화하고  보르도지방을
영국(잉글랜드)이 소유하고 그 대신 영국왕은
프랑스왕위계승권을 포기합니다
한마디로 영국은 300년간 이어져온 프랑스왕에 대한 봉건적 의무에서 해방되고
경제요 중지 보르도 지방을 소유하게 된 겁니다

요렇게 백년전쟁 초반은 거의 영국의 완승
하지만 에드워드 3세와 흑태자 윌리엄이 죽고
혼란에 빠지는데
이때 국지전을 벌이며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토를
수복한 왕이 있었으니 그가 샤를 5세입니다
재밌는 건 이후 또 긴 휴전에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에드워드 3세 샤를 5세를 이은황
리처드와 샤를 6세가
겁나게 어렸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샤를 6세는 20대에 접어들면서
정신병증세를 보이는데 이때 권력을
잡은 이들이 부르고뉴파입니다
부르고뉴 파는 친잉글랜드족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헨리 5세가 등장합니다
그는 샤를 6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다시 침략을 시작하고
영화에도 나오는  1415년 아쟁쿠르 전투고
여기서도 영국(잉글랜드)은 대승을 거두고
파리까지 장악해버립니다
그리고  1420년 영국왕의 프랑스왕위계승권을
명문화한 트루아조약을 맺습니다
현리 5세가 샤를 6세의 딸과 결혼하고
그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면 샤를 6세 사후
왕위를 계승한다는 내용의 조약입니다

그리고 1422년 생후 9개월 된
헨리 5세의 아들 헨리 6세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공동왕의 자격을 얻을 상황이 발생하는데
1429년 드디어  오를레앙의 처녀
프랑스의 성녀가 등장합니다
잔다르크

그녀가 활동한 기간은 채 2년 남짓입니다만
그녀의 활동으로
백년전쟁 내내 영국에게 끌려다니던
프랑스는 전쟁후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신의 말씀을 들었다는 그녀의 지휘로
사기충천한  프랑스군은 7개월간 오클레앙포위하고 있던 잉글랜드 군을 격퇴하고 포위하고 연전연승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던 왕세자
샤를 7세를 즉위시켰습니다만
결국 즉위 후 생각이 변한 샤를 7세에게
지원을 끊어버린 상황에서 조국프랑스를
위해 분투하지만
콩피에뉴 전투에서 패하고 잉글랜드와 동맹한 부르고뉴 군대에 포로가 되고 영국에 넘겨서
이단심판을 받고 1431년 5월 30일
루앙 광장에서 화형으로 19살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떠나고 23년이 지난 1453년
잉글랜드 군이 패퇴하면서 116년간의 백년전쟁은
끝이 납니다

이긴 전쟁을 통해서
프랑스는 카페왕조가 끝나고 발루아왕조가 시작되고 기사계급 봉건제도가 몰락하면서 절대왕조 로가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영국은 초반승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프랑스 내
영국영토를 모두 빼앗기고 왕조가 불안해지면서 다시는 유럽대륙으로
진출하지 못했으며 결국엔 장미전쟁 일어나
왕조가 교체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양국모두 국민정체성이 확립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씨부려본
백년전쟁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