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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상식 좀 이상한국가체제 일본군국주의(軍国主義)

같은시간을 사는 남자 2024. 5. 31. 21:30


오늘의상식 좀 이상한국가체제 일본군국주의(軍国主義)


일본군국주의(軍国主義)
이 국가체제는 좀 특이하죠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
파시즘국가인데
독일은 히틀러
이탈리아는 무솔리니라는 미친 새끼를
중심으로 탄생했지만
일본은 군이라는 세력의 광기과 그에호응한 국민들로 파시즘(군국주의) 국가 가되었습니다 좀 이상하죠^^

오늘은 이 이상한 국가체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망했는지에 대해서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씨부려보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먼저 당시 상황을 알아봐야겠죠

독일이 베르사유조약으로 경제가 거덜 나면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은거처럼
일본도 그 꼴이랑 비슷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유럽전장의 군수공장으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유럽이 재건되기 시작하면서
호황은 끝이 났죠
이걸 반동공황(反動恐慌)이라고 부릅니다
그다음으로 찾아온 건
1923년 관동대지진(関東大地震)으로 시작된
진재공황이었습니다 수도 도쿄의 기능이 오랜 시간
마비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만은행의 뱅크런으로 시작된
쇼와금융공황이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중소은행이 파산하고 더불어
소상공인들도 함께 파산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대공황이 있기 전
이미 숨만 깔딱깔딱 쉬고 있을 정도로 망해있었다는 겁니다
유럽과 미국은 1920년대 호황을 누린 것과 비교되죠

물론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나름 민주화의 성과를 이뤘지만
당시 일본경제의 주축인 농업의 중소자작농 소작농의
붕괴는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대기업만을 지원하면서 붕괴를 더 촉진시켰죠

이때 이 모든 사태를 예의주시하던 세력이
엘리트의식이 가득한 젊은 장교들로 구성된
일본군부였습니다

이들은 군이 나서서 일본을 개혁해야 한다는
사상에 듬뿍 빠져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일본에 1929년 대공황이 찾아옵니다
이 꼬락서니로 나라가 돌아가니
일본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지라고는 독립의지 가득한 조선밖에 없는 일본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고
이때 군국주의가 등장합니다

당시 일본의 젊은 장교들은 만주를 점령
일본제국의 병참기지로 확보해야 한다는
만몽영유사상이 팽배했었는데

이걸 이루기 위해
일본군의 일개 작전장교인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는
당시 봉천군벌 장쭤린을 암살을 위해
1928년 6월에
장쭤린암살작전(황고둔사건 皇姑屯事件)을
실행합니다

근데 재밌는 건 이 암살작전은
일본본국 심지어 직속인 관동군상부의
어떤 명령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아이 계획은 장쭤린이 죽으면 봉천이 혼란에 빠질 것이고 이때 일본군이 출병 만주를 먹는다는 건데
오히려 이아이는 이 사건을 계기로 동경으로 소환되고
봉천군벌의 후계자가 된 장쭤린의 아들
장쉐량이 북벌을 진행하던 장제스의 국민당국에
투항하는 동북역치 가 일어나며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의 대륙진출의 꿈은
물거품이 된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내각은 총사퇴
사건을 일으킨 관련자들은 처벌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으니 관동북의 간은 배 밖으로 나오게됩니다


드디어 1931년 9월 18일
만몽영유계획의 실행을 꿈꾸던 망상형 이상주의자
이시하라 간지대좌의 주도로
자작 폭탄테러 류탸오후 사건(柳條湖事件)을 일으키고
만주를 침공하니 이게 만주사변(滿洲事變)입니다
아시다시피 만주사변(滿洲事變)은 관동군의 원사이드게임이었습니다

이렇게 만주를 빠르게 점령해 나가니
관동군의 사기와 위상은
말할 필요 없겠죠
이에 내각은 긴급예산까지 편성해 주었습니다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까지 세웠고요

근데 당시 중국최고의 봉천군벌은 왜 이렇게
쓸려나간 걸까요
여기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군벌의 수장 장쉐린의 오판설 아편중독설이 있습니다

암튼
일본의 내각은 차츰 무능력해졌습니다
이건 당시 일본의 헌법에 따르면 총리대신은 내각관료의 입명 파면의 권한도 없었고
의견조정권도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결정권자 천황이 명을 내려 해결해야 했는데
천황이라는 작자는 관동군의 미친 짓에 침묵했으니 까요

천황의 침묵은 내각의 관동군견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자신들은 천황의 명령만을 받는다고
믿었던 관동군이 미쳐 날뛰는 건 어쩜 당연한일였을겁니다

만주사변을 통해 만주를 얻은 관동군은
대륙점령이라는 악수를 두게 됩니다

그전에 두 번의 쿠데타가 일어나는데
이일로 일본은 군이 권력을 잡고 본격적으로 군국주의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는  이누카에 총리 암살사건으로
런던해군군축조약을 두고
조약파와 함대파로 나뉘어 대립하던
일본해군의 함대파가 일으킨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이누카에 총리는 사망했는데
이 양반은 런던해군군축조약에 반대하던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왜 죽인건지 ^^
한마디로 함대파와 뜻이 같은 사람이였는데 ㅡㅡ;;

이 사건의 주범인 함대파들은 군법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수많은 탄원서 답지하면서
처벌은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육군의 쿠데타 1936년 2.26 사건이 일어납니다
해군과 마찬가지로 일본육군도 황도파와 통제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는데
육군권력을 잡은 통제파가 황도파 숙청에 나서면서
이에 분노한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내각관료들을
처단하고 천황의 친정을 외치며 봉기했습니다

하지만 천황은 황도파의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을 반군으로 규정 계엄령을 내려
그들을 압박했고 2월 28일 반란군이 원대복귀
할복 체포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이 두 사건을 계기로 내각은 군부의 뜻을 거스를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하긴 뭔일만 터지면 내각관료들을 죽이는데
그럴만도 하죠

이때부터 모든 일이 군부의 뜻대로

1937년엔 무타구치 렌야의 뻘짓거리로 중일전쟁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ㅡㅡ;;

한마디로 아시아에서 벌어졌던 2차 세계대전은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인 충성과 자신감 과잉으로
가득했던 일본군부의 미친 짓거리의 연속이었다는 겁니다 ㅡㅡ;;

결국 통제파의 수장 군인 도조히데키가 1941년 총리대신이 되고 이때부터 일본은 나락을 가게 됩니다

진주만공습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맞짱뜨는 무리수를 던진 일본은 미국의물량전에
꾸준히 얻어터집니다
반자이돌격 가미가제 일본군국주의의 광기는 상식을 넘어신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두발의 원자폭탄을
맞고서야 광기는 멈추게됩니다

여기까지가 같은시간을 사는남자가 씨부려본
좀 이상한국가체제 일본군국주의(軍国主義)
였습니다